설립취지
임연재종택의 [책방]은 비록 현대적 의미의 도서관과는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도서관의 주요 구성요소를 갖추고 있던 조선시대의 [사설(私設)도서관]이었습니다.
쉽게 접하지 못했던 우리나라 도서관 역사의 일부를 확인도 하고
[백죽고택작은도서관]에서의 독서를 통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보세요!
 
1. 가문 및 종택의 역사

이 집은 흥해배씨의 안동 입향조이며 불사이군(不事二君)의 고려유신이자 조선 초기 안동지역에 성리학풍의 초석을 놓은 백죽당(栢竹堂) 배상지(裵尙志,1351~1413)가 1392년에 외가(일직손씨)와 처가(안동권씨)가 있는 안동으로 입향한 이래 22대, 630여 년의 세월을 이어오고 있는 가문의 종택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과 성균관대사성·명나라 사신 및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했던 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益,1534~1588,자:여우汝友)(종손의 15대조)을 불천위(不遷位)로 모시고 있다.
종택은 배삼익의 부친 증병조참판 배천석(裵天錫, 1511~1573)이 1558년에 안동시 월곡면 도목리에 건립했으며, 안동댐 건설로 인해 현 위치로 이건했다. 당호(堂號: 집의 호)는 금역당(琴易堂)인데, 이는 배삼익의 아들이며 임진전쟁시 의병을 일으켰고,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충청도도사 등을 지낸 배용길(裵龍吉, 1556~1609, 자:명서明瑞)의 호를 붙인 것이다.
불천위종택은 앞에 불천위의 호를 붙여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공식적인 명칭은 [임연재종택]이나, 입향조인 백죽당의 종통을 잇고 있으므로 [백죽당종택]으로 불러도 무방하다.

 
2. 16세기부터 이어온 사설도서관
 

책은 특정인의 지식과 감정 등을 문자로 표현해서 엮은 것이며, 인류는 이러한 책을 통해 타인 및 선대의 정보를 습득·연구·발전시켜 후세에 전할 수 있었다. 책은 인류문명의 발전 및 진화에 기여한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이다. 도서관은 책 및 자료들을 수집·정리·보관하여, 이를 열람 및 대출을 통해 책 등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여러 사람들에게 전파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조선시대의 공식적인 도서관은 성균관, 규장각 등의 국가에서 운영하던 도서관과 민간 차원에서는 각 지역의 서원 등이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으나, 서원 또한 운영 및 관리주체가 개인이 아니라 유림이라는 준공적인 단체였으므로 서원에서 책을 열람하고 대출하는 데에는 일정한 제약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서점은 없었으므로 원하는 책을 쉽게 구할 수도 없었다.

이 집은 책을 많이 수집했으며, 체계적으로 정리(서목書目의 작성 및 장서인藏書印의 날인)했고, 전용공간(책방)에 보관했으며, 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열람·대출했다는 아래와 같은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다. 임연재종택의 책방은 비록 현대적 의미의 도서관과는 다소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 시대에서는 지역사회에서 현재의 도서관과 같은 기능을 담당했다. 운영주체는 종택과 종손이었으므로 순수 사설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시작은 종택이 건립된 1558년 이후, 배삼익이 활동했던 시기인 16세기 중엽 무렵이었다.

 
3. 장서 수집 및 서목(書目) 작성
 

배삼익은 후세에 책을 많이 수집했던 장서가로 알려져 있다. 종택이 건립되던 해인 1558년에 생원시에, 1564년에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풍기군수 및 양양부사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고, 오늘날의 서울대학교에 해당하는 성균관에서 학유.학록.학정.박사.사예.사성 등을 거쳐 총장격인 대사성을 지냈으며, 1587년에는 진사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배삼익이 이처럼 장서가가 된 데는 교육기관에서의 오랜 근무경력과 명나라에 가서 중국책을 수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영향도 있었겠지만, 이 보다 더 큰 이유는 책을 좋아하는 마음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장서를 관리하고 이를 빌려줄 수 있기 위해서는 도서목록의 작성은 필수였다. 종택에는 이런 장서지가의 면모와 책을 효율적으로 관리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사료인 두 권의 서목(도서목록집)이 전해오고 있다. 1586년(선조19년, 만력14년)에 배삼익이 작성한 『책치부(冊置簿)』1727년(영조3년) 월봉(月峯) 배집(1710~1755)(종손의 9대조)이 작성한 『외암비장(畏巖秘藏)』 이다. 이 두 권의 서목은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하였고, 책방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모사본이다.

『책치부』는 1588년에 작성된 국가장서목록인『실록포쇄형지안』보다 2년 앞서 작성된 우리나라에서 전해오는 서목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책치부』는 보유하고 있는 책을 실학질(實學秩)․사기질(史記秩)등 11주제로 분류해서 작성하고 있다. 현재는 ‘10진분류법’이라는 공통된 분류체계가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현재와 같은 분류체계가 없었기에 관리의 편의를 위해 이런 분류법을 창안해냈을 것이다.『책치부』를 보면, 주제·분류․서명․책수․복본수(동일한 책의 수)․잔존 책수․입수방법․판종․대출자 등을 알 수 있으며, 서적의 입수 방법은 내사(임금에게서 하사 받은 책)․기증․구입․편찬의 4가지 방법이었다. 특기할 것은 임진왜란 이전임에도 판종(금속활자·목판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는 점이다.『책치부』는 상당한 기간 동안 종택의 장서원부, 장서점검과 대출대장 등으로 활용되었다.『외암비장』의 기록에 따르면『책치부』에 수록되어 있는 책의 수량은 2,882책에 이른다.

『외암비장』은 1724년(경종4년) 6월의 홍수로 인해 종택이 훼손되었고, 보유하고 있는 책도 큰 피해를 당한 후, 1727년(영조3년)에 배집이 남아 있던 서적과 목록을『책치부』에 기초하여 재정비한 것이며 당시 조상 전래의 서적은 1,573책만 남았다고 기재되어 있다. 분류방법은『책치부』가 11주제로 구분한 데 비해,『외암비장』은 경질(經秩)․사질(史秩)․이학질(理學秩)등 25주제로 구분되어 있다.『책치부』와 마찬가지로 서적마다 서명·복본수·책수·판종·입수방법 등이 기재되어 있다.

『책치부』에는 종택에서 대출해 간 사람의 실명 또는 관직명 등이 기재되어 있고, 확인된 수는 107명 정도이다. 예를 들면, 어떤 이에게 어떤 책, 몇 권을 빌려주었다는 식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문집 등을 보면, 어떤 이는 책을 빌려 달라고 간곡한 어조로 편지를 써오기도 했고, 어떤 이에게는 빌려간 책을 돌려달라고 썼던 독촉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이런 사실들로 비추어 볼 때, 종택에서 책을 대출해 간 인물은『책치부』에 기록된 것 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2,882책이라는 책의 수가 얼마나 많았던 것인지 감이 잘 오지 않겠지만, 전래되어 오는 다른 서목이나 사료들을 살펴봐도 집에 이렇게 많은 양의 책을 수장하고 있었다는 기록은 드물다.

 
 

위는『책치부』중 理學秩(이학질)편의 한 면이다. 이를 보면『책치부』는 단순히 보유하고 있던 서적의 제목만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당시에 책을 관리하는 방법이나 어떤 책을 소장하고 있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우리나라 서지학의 중요한 사료이다. 표기 방법 및 내용 등은 아래와 같다.
11주제의 분류 중 理學秩(이학질)편의 도서목록이라는 의미
書名(서명,책이름)
복본수: 같은 책의 수를 의미, 1종이면 一件(1건), 2종이면 二件(2건) 등으로 표기
卷(권): 책의 권 수
책판의 종류: 금속활자본이면 鑄(주), 목판본이면 木(목)으로 표기
唐(당): 중국에서 출간된 책이라는 의미
책의 유무 표기: 수장되어 있으면 全(전), 분실 등의 사유로 없는 경우 無(무) 내지 不秩(부질)
賜冊(사책): 임금에게서 하사 받은 책
借(차:대출): 대출해 간 사람의 성명·호·관직 등을 표기
⑩ 상단의 은 장서 점검시 표기한 흔적이며, 이는 필요시 수시로 장서 점검을 했다는 의미임

 
4. 소유권의 확인, 장서인(藏書印)
 

장서인은 소장자가 자신의 소유임을 밝히기 위한 목적 등으로 책에 찍었던 인장 같은 것인데, 임연재종택 또한 소장하고 있는 책에 장서인을 날인하여 소유주임을 밝혔다. 이런 장서인의 날인은 대출이나 반납과정에서 분실 및 소유권에 관한 분란을 방지하기 위한 필요한 행위로 보여 지며, 요즘으로 치면 바코드나 인식표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종택에서 전래되어 오던 장서인은 아래의 그림처럼 다양하며, 형태는 방형·종형·향로형·병형(甁形) 등이다.

 
 

종형의 [금역당] 장서인(그림10)은 종택의 책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장서인이며, 현재 가문의 문장(紋章)으로 사용하고 있다.장서인의 종류 또한 다른 소장자에 비해 많은 편이다. 이는 장서의 수가 많았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위변조 등을 방지하기 위해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여러 가지 장서인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5. 책을 통한 배려의 공간, 책방(冊房)
 

종택은 1558년에 건립했고, 1700년대 초반에 큰 수해를 입어 일부가 유실 된 후 현재의 모습으로 개축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종택에는 개축 전의 공간구조를 알 수 있는 아래와 같은 「금역당구가도(琴易堂舊家圖)」 가 전해오고 있다.

 
 

현재 [전시실]이 있는 공간이 1558년부터 1700년대 초반까지 책을 보관했던 책방이며, [책방1]이 개축 후부터 현재까지 책방으로 이용하고 있는 공간이다.
이를 보면 책을 보관하던 장소인 [책방]이라는 공간이 별도로 구획되어 있는데, 이는 도서관이 갖추어야할 공간적 구성요소에 해당한다.

 
 

주황색 부분이 현재 남아 있는 종택이다. 18세기 초 개축으로 인해 책방이 있는 별당채(대청채)와 동측의 안채가 분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금역당구가도」는『주자연보(주자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에 나오는 [중당(中堂)]이라는 공간이 도면에 표시되어 있는, 우리나리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유일한 건물평면도이며, 16세기 성리학적 이념에 기반을 두고 건립된 건물의 공간구조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연구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집은, 1558년 건립당시 주자가례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기 위한 공간구조였고, 집 중앙부의 중당을 기준으로 서측은 남자들의 공간으로, 동측은 여자들의 공간으로, 중당은 남녀의 공용공간으로 이용했으며, 책을 열람하거나 대출하러 오는 방문객들을 위해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인 사랑의 서측 옆에 책방을 두었고, 책방의 서측 옆, 방에서 열람할 수 있도록 배려했던 흔적을 볼 수 있다.

개축 이후에도 책방 앞의 방과 서측의 방에서 책과 관련된 방문객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대청채는 종택의 제사·집회 및 접빈객의 공간이고, 이 방문객 중에는 책을 빌리거나 열람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6. [백죽고택작은도서관]의 설립취지
 

책을 많이 수집하고, 보관할 공간을 확보하고 서목을 작성해서 도서관을 운영했던 일은 배삼익 당대에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이 후 여러 대를 거쳐 온 이 종택 만의 독특한 전통이었다. 이는 책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이를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려 했던 노력과 신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책치부』『외암비장』를 보면,『삼국사기』,『삼국유사』등의 희귀본도 다수 보유하고 있었으나 아쉽게도 현재 종택에는 전해지지는 않는다. 종택의 수많은 장서는 일제강점기와 근현대사의 격랑기를 지나오면서 지켜내지 못하고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다. 현재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약 600권을 비롯하여 여러 도서관 및 박물관 등지에 수장되어 있다.

종택 수장본도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해서 비워져 있는 책방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가 비록 그 시절의 책은 아니지만, 현 시대에 어울리는 책을 다시 채워 넣어 작은도서관을 개관했다. [백죽고택작은도서관]은 16세기 중엽에 시작된 임연재종택 사설도서관의 역사와 전통을 잇고 있다. 비록 장서의 수는 기관 등이 운영하는 도서관에 비해 적지만, 이 곳이 우리나라 사설도서관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현장이자 보존하고 후세에 물려줘야 할 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을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여기 [백죽고택작은도서관]은 적어도, 책에 관해서는 모두가 평등한 곳이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잠시라도 행복한 공간이었으면 한다.

 
7. 종손이 제안하는 독서의 방법, 오감(五感)독서
 

책에서 정보나 지식을 얻기도 하지만, 저자의 감정이나 느낌을 전달받기도 한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이나 한 줄의 글이 때로는 인생을 바꿀 수도 있고, 좋은 책을 읽고 나면 그 향기는 오랫동안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기도 한다.

문화재이면서 오래된 도서관인 이 곳에서 해 볼 수 있는 독서의 방법인 ‘오감독서’를 제안해 본다. 책을 단순히 읽는 것에만 국한하지 말고 몸의 여러 감각을 이용해서 책을 읽어볼 수 있다면 독서의 즐거움과 책에서 얻는 깊은 여운과 향기가 더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으리라 생각한다.

오감독서는 눈으로 글자를 따라가면서 읽는 시각. 손으로 책장을 넘기면서 손끝에서 느끼는 촉각. 새 책에서 나는 잉크냄새나 오래된 집에서 맡을 수 있는 잘 숙성된 향기의 후각.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와 고즈넉한 종택과 주변의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비 오는 날의 빗소리 등의 청각. 그리고 마치 자신의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만났을 때와 같은 맛있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을 때의 미각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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